그 시작을 고하는 '작헌의’, 화령전을 다녀오다
지난 2012년 화령전 ‘작헌의’ 행사가 진행됐었다.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1801(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 영전이라고 하면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화령전엔 정조대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봉안해 놓았기 때문이다.
화령전의 이름은 화성에서 화를 가져왔고, 국풍주남 갈담의 마지막 구절인 ‘부모에게 문안하리라’에서 ‘령’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묘전각의 편액은 순조가 직접 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화령전에서 열리는 의식행사인 ‘작헌의’는 술따를 ‘작(酌)’ 바칠 ‘헌(獻)’ 으로 임금이 손수 잔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왕비의 조상이나 문묘의 신위에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던 제도로서 본래는 계급이 낮은 하관이 상관에게 하거나 제자가 스승에게 아뢰거나 물어보고자 하는 말이 있을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술병을 들고 찾아가는 예'라고 생각한 데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러한 의식이 발전하면서 작헌은 산 사람 사이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소원을 빌면서 술잔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훗날 제례형식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헌의’는 전통의식 행사다. 수원화성 또는 정조대왕과 관련된 전통의식은 주로 정조의 영전인 ‘화령전’에서 하거나 팔달산 위에 위치한 ‘성신사’에서 행사를 여는 경우가 많다.
화령전을 방문하면 건축물에 대한 모양이나 구조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날 작헌의 의식을 보고나선 화령전과 전통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숙연한 의식행사에 전통복장을 한 제례악과 제례무 단원들의 하나하나 움직임과 악단의 소리에 더욱 숙연한 마음까지 들게 한다.
절차로는 제관과 제집사를 임명하는 의식인 분정, 작헌의 시작을 현관에게 고하는 의식인 청행사, 울찾주와 폐백을 올리는 의식인 신관례, 헌관이 잔을 올리고 푹문을 읽는 의식인 헌례, 잔을 받아 복을 받는 의식인 복례,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의식인 망요례, 작헌례(酌獻禮)를 마치는 것으로 헌관에게 고하는 의식인 필례 순으로 의식이 진행됐다.
시민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
시민환영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 행사는 화성문화제 중에서도 규모가 큰 대규모 행사로, 종합운동장을 시작으로 장안문을 거쳐 행궁삼거리를 지나 연무대까지 이르는데 이 행사가 진행될 때면 수원시민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몰린다. 4시 가까이 되자 곧 장안문에 도착했다.
장안문 성 밖엔 작은 무대가 마련되었고, 양쪽엔 주한외국인사절단을 비롯해 많은 내빈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각 시의 시장과 국회의원, 도·시의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곧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행사가 진행됐다. 장안문 앞에선 행렬이 도착하기 전 작은 공연이 펼쳐졌는데 어린아이들이 나와 ‘강남스타일’의 노래에 맞춰 댄스 춤을 선보였다.
시민환영퍼레이드에서는 버드네 풍물팀, 밤밭어린이방송 및 성인 댄스팀, 신풍초등학교 취타대, 태권도시범,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국제청소년 춤 공연과 수원이 연고지인 삼성전자를 비롯, SK의 공연도 이어졌으며 이날 퍼레이드에는 2천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태권도 시범 무대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낼 만큼 수준 높은 시범을 선보였다.
시민환영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해질녁 무렵, 정조대왕능행차연시가 바로 진행됐다. 기존의 한 낮에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행사에선 야간에 행차가 이뤄졌다. 이날 자리엔 지역의 많은 인사들도 참여했다. 의복을 갖추고 정조대왕을 맞이했다. 능행차 행력은 인원 1,200여명과 말 79필이 행차에 동원됐으며 수많은 인파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행차는 화성행궁으로 이어졌으며 개막 경축 타종식에는 김문수 도지사와 염태영 시장이 참석해 시민의 가장 큰 축제인 수원화성문화제의 성공을 기원했으며 행궁에서는 개막축하공연도 펼쳐졌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