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 주장은 겉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전략산업의 작동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장에 가깝다. 반도체는 공장만 세운다고 산업이 되는 분야가 아니다. 전력·용수·물류·인력·협력사·규제·R&D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이 톱니바퀴를 한 번 흐트러뜨리면, ‘이전’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지연과 후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아래에서는 “왜 이전 논리가 성립하기 어려운지”, “왜 용인이 유리한지”를 인프라·산업생태계·국가 신뢰·시간 비용 관점에서 꼼꼼히 짚어본다.
이전은 ‘정책 수정’이 아니라 ‘국가 신뢰의 붕괴’다
현재 용인 일대에서는 삼성의 국가산단과 SK하이닉스의 일반산단을 중심으로 대규모 클러스터 구축이 진행 중이며, 장기적으로 다수의 팹 구축 계획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이전론은 기업 입장에서 투자 의사결정의 전제인 입지, 인허가, 인프라 약속이 흔들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몇십 년을 전제로 한 장기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 산업은 전력망과 용수, 공정 로드맵을 10~20년 단위로 설계하기 때문에 정책의 신뢰가 무너지면 그로 인한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균형 발전을 논하는 담론을 넘어 국가 산업 전략의 신뢰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고객사와 파트너들 입장에서도 한국의 산업정책이 정치적 이유로 뒤집힐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국가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반도체는 “전력과 용수”가 0순위다. 용인에는 이미 국가 계획이 깔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와 관련 기관이 예상하는 10GW 이상의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변전소 신설과 송전선로 구축, 신규 발전소 계통 연계 등의 전력 인프라 계획이 이미 추진 중이다. 전력망을 용인 중심으로 설계해 운영하는 것은 반도체 산업의 물리적 제약을 고려한 필수적인 조치다.
반도체 공정이 24시간 멈추지 않고 가동되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전력이 필수적이다. 전력 품질이 흔들리면 반도체 제품의 수율이 떨어져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용인 지역에서는 하루 107만 2,000톤 규모의 용수 공급 방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여주보를 통한 추가 공급으로 하루 133만 7,000톤의 용수 공급이 계획되고 있다. 환경부의 자료에 따르면, 팔당댐에서 용인 국가산단까지 약 46.9km에 달하는 용수관로 신설이 2031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용인은 단순히 공장 부지로서의 역할을 넘어 수도권 반도체 벨트의 허브로 설계된 산업 생태계의 결절점이다. 성남, 수원, 화성, 용인, 평택, 이천을 잇는 ‘메가 클러스터’ 구상은 설계부터 생산, 연구, 인재 양성, 소재·부품·장비(소부장)까지 모든 주기를 아우르는 네트워크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강점은 용인의 인력 접근성, R&D 연계, 협력사 집적 효과, 물류 및 수출 동선, 정책 및 인프라의 이미 진행 중인 효과로 요약된다. 용인은 반도체 산업의 성공을 위한 시간과 연결의 누적 위에 서 있으며, 단순히 넓고 저렴한 땅으로 대체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용인은 ‘공장 자리’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결절점’이다.
경기도 용인이 단순히 공장 부지가 아닌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결절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하나의 기업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복잡한 네트워크 산업으로, 소재·부품·장비부터 설계, 후공정, 물류, 장비 유지보수, 테스트, 인력 교육 등 다양한 요소가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용인은 수도권 반도체 벨트의 허브로서 설계되어 있으며, 독립된 섬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용인의 구조적 강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반도체 핵심 인력이 수도권에 두텁게 분포하고 있어 기업, 대학, 연구기관 간 이동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인력 접근성이 뛰어나다.
둘째, 판교의 팹리스와 소프트웨어, 수원·화성·평택의 생산거점, 이천의 메모리 산업과 주변 대학·연구소와의 연계가 촘촘히 이루어져 있어 연구개발(R&D) 연계가 잘 되어 있다.
셋째, 장비·부품·케미컬·클린룸·유지보수 등 협력 생태계가 밀집해 있어 시간 비용이 절감된다.
넷째, 고속도로와 철도망 등 수도권 물류 인프라에의 접근성이 높아 글로벌 공급망 대응에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전력·용수·교통 등 국가 및 지자체 사업이 이미 용인을 중심으로 맞물려 추진되고 있는 정책·인프라의 진행 중 효과가 있다.
이전론의 가장 큰 비용.. “시간”과 “불확실성”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비용은 단순한 공사비가 아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연 비용이야말로 실질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연은 정치적 논쟁과 절차적 장애물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 위험을 증가시킨다.
전력망 재설계부터 송전·변전 인허가, 주민 수용성, 그리고 계통 안정성까지, 각 단계에서의 지연은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킨다. 용수 공급 재설계는 취수원부터 관로, 정수·초순수 설비, 그리고 환경영향평가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협력사의 재배치는 공급망의 재구축과 장비 설치·검증, 품질 인증 등 다양한 절차가 필요하다.
인력 이동은 또 다른 도전 과제다. 주거, 교육, 생활 기반이 갖춰져야 하며, 인력 유출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고객 대응에서는 납기, 품질, 안정성의 신뢰를 재확인해야 한다.
특히, 초미세 공정은 장비 설치 후 검증에 긴 시간이 소요되며, 라인 안정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정치적 논쟁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지연된다면, 한국은 미국, 대만, 일본, 유럽 등의 경쟁국들이 제공하는 보조금과 투자 경쟁 속에서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곧 시장에서의 위치와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럼 지역 균형 발전은?”.. 답은 ‘이전’이 아니라 ‘분업·특화’다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해법으로 ‘이전’보다는 ‘분업·특화’가 강조되고 있다. 호남 지역의 산업 도약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기존 국가 핵심 거점을 옮기는 대신 호남에 적합한 반도체 및 첨단 산업의 역할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호남 지역은 특정 소재·부품·장비의 특화, 재생에너지 및 전력계통 연계와 같은 전력·에너지 기반의 구축, AI 데이터센터 및 패키징·테스트·후공정 연계, 그리고 국가 연구시설 및 인재 양성 거점 조성 등 ‘새로운 성장 축’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용인을 지키면서도 호남을 성장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반대로 용인에서 빼서 호남으로 옮기는 방식은 두 지역 모두의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용인 프로젝트의 규모가 말해주는 것.. “국가가 이미 선택했다”
정부는 용인 남사읍 일대에 2042년까지 300조 원 규모의 장기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산업 전략의 일환이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용인을 단순한 후보지가 아닌 국가가 산업 전략상 이미 선택한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용인 일반산단 원삼면에서 첫 팹 공사를 진행하며 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한 점은 용인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는 정부의 K-반도체 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용인이 향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청사진은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국가 차원의 산업 발전과 연계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용인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축으로 설계됐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반도체는 표가 아니라 미래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이슈가 아닌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용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메가 클러스터는 전력과 용수, 인력과 공급망이 결합된 최적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반도체 산업의 이전 논의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불확실성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디로 옮길까”가 아니라 “용인을 어떻게 세계 최상위 반도체 거점으로 완성할 것인가”이다. 용인을 세계적인 반도체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호남 지역에 특화된 성장 전략을 도입해 새로운 경제 엔진을 구축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시급하다. 용인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전략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금,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은 정치적 논쟁의 도구도 아니며 표도 아니다.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