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대한민국은 다문화 사회”라는 구호는 이제 낯설지 않다. 정부는 저출산 해법으로 외국인 유입 확대를 공언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다문화 지원센터와 국제가족 프로그램을 앞다퉈 운영한다. 거리와 학교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다문화 가정 자녀를 마주치는 일도 일상이 됐다.
그러나 정책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풍경과 제도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겉으로는 ‘다문화’를 말하지만, 실제 제도 설계는 1990년대식 “외국인은 관리 대상”이라는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뚜렷한 영역이 출입국·체류 정책이다. 현행 제도는 불법체류 차단, 무허가 취업 방지, 체류 질서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 차원에서 필요한 기능이지만, 사회 구조가 이미 달라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과거형이라는 지적이다.
2026년 한국에서 외국인은 더 이상 ‘일시적으로 들어와 일하고 나가는 노동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이주민, 한국 국적을 취득해 세금을 내고 자녀를 키우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평범한 이웃, 시민으로 살아가는 외국인·이주민이 많아졌지만, 제도는 여전히 이들을 ‘체류 관리’의 틀 안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순은 국제가정에서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딸이 국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외국 국적 부모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 손주를 돌보고 주방 일을 거드는 상황은 가족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러나 출입국 관리의 시선은 다르다. 반복 입국이나 일정 기간 이상 체류가 이어지면 “사실상 장기 체류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고, 다음 입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듣는 사례도 나온다.
국민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 한국인 부모가 자녀 가게를 돕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국 국적 부모는 같은 일을 하려 할 때 ‘체류 목적 외 활동’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다문화를 환영한다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가족 관계가 제도 밖에 머무르는 셈이다. “다문화 가정을 장려한다면서 정작 우리 가족은 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느낌”이라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 재량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일한 상황인데도 누구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입국 허가를 받고, 누구는 추가 심사를 받는다. 법에 명시된 체류 기간과 자격보다 심사관의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결과 “법보다 재량이 우선한다”는 불신이 쌓이고, 제도는 예측 가능성을 잃는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을 단순 관리 대상으로만 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와 국제가정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정책 역시 ‘위험 관리’ 중심에서 ‘생활과 권리 보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가족 돌봄, 생활형 체류 같은 영역을 여전히 과거 기준으로만 다루는 것은 시대 변화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가는 체류 질서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기 불법체류나 불법 취업을 막되, 한국 국적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직계가족, 돌봄·생계와 직결된 체류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심사관 재량에 의존하는 구조를 방치할 경우, 국제가정은 계속해서 “언제든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다. 그러나 외국인 정책은 여전히 1990년대식 ‘관리 논리’에 발이 묶여 있다. 저출산 해법, 노동력 확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외국인을 전제로 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