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대한민국 다문화 현실 보고서-국경 안의 가족들 ➄] “심사관 운이 더 무섭다”…출입국 ‘재량’에 흔들리는 국민 신뢰

국제·다문화 가정 출입국 심사에서 반복되는 예측 불가능성 문제
관리·통제 중심 출입국 정책과 다문화 사회 현실 간 괴리

 

[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재량인가, 사실상 권한인가.”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본 이들이 가장 자주 떠올리는 질문이다. 국가의 안전과 체류 질서를 책임지는 기관인 만큼 현장 판단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오래전부터 유지돼 왔지만 정작 그 현장을 통과해야 하는 국민이 체감하는 감정은 다르다. “재량이 아니라 사실상 절대권한처럼 느껴진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특히 국제가정과 다문화 가정에서 두드러진다. 같은 종류의 비자를 소지하고, 같은 조건으로 입국을 시도하더라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경험담이 반복해서 나온다.

 

어떤 이는 몇 마디 질문에 그치고 곧바로 입국 허가를 받는 반면, 또 다른 이는 별도 심사실로 이동해 오랜 시간에 걸친 설명을 요구받는다. 때로는 “다음 입국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듣기도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법과 제도보다 심사관 개인의 판단이 더 크게 작동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이 국민에게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법은 원칙적으로 국민이 자신의 권리와 한계를 미리 알 수 있도록 존재한다. 비자에도 체류 가능 기간과 자격이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실제 심사 현장에서는 “장기체류로 보인다”, “취업 가능성이 있다”, “방문 목적이 의심된다”와 같은 추상적인 판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물론 국가 입장에서 불법체류와 무허가 취업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허용이고, 어디부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명문화된 기준보다 ‘보이지 않는 선’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스스로 위험을 피하기 위한 행동 기준을 세우기 어려워진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국제가정이 겪는 현실과 제도 사이의 간극은 더 크다. 예를 들어, 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국내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고, 외국에 사는 부모가 일정 기간 한국에 머물며 자녀의 일을 돕고 손주를 돌보는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가족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러나 출입국 당국은 이를 장기체류나 체류 목적 외 활동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족의 돌봄과 생계 지원이라는 일상적 행위가 단속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 국제가정은 자신들이 ‘잠재적 위반자’로 의심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다문화는 환영한다면서 왜 가족은 계속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정책 기조와 현장 운영 사이의 모순을 지적하는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고, 국제결혼·이주민 지원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밝히지만, 정작 공항과 항만의 심사대 앞에서는 가족의 일상적인 왕래조차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적 현실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심사 결과가 사람마다 다르게 체감된다는 점도 행정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아무 문제 없이 입국하고, 누구는 강한 경고를 듣는 경험이 반복되면, 국민은 법과 규정보다 ‘심사관 운’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는 곧 “행정이 일관되게 작동한다”는 믿음을 흔드는 지점이다.

 

전문가들은 재량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재량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재량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명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사되고 있는지 여부다. 최소한 어떤 기준이 적용됐고 왜 이런 판단이 내려졌는지 설명 가능해야 하며 비슷한 사례에는 비슷한 결론이 나오는 일관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은 법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출입국 행정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2026년의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결혼과 이주민 가정은 더 이상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학교와 직장, 지역사회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 됐다. 그럼에도 출입국 정책은 여전히 ‘관리와 통제’ 중심의 관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족 구조와 이동 양식이 다양해진 현실을 제도와 운영이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입국 심사 현장에서의 재량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 재량이 국민에게 ‘불확실성’이 아닌 ‘합리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기준 공개, 사례 중심의 안내, 심사관 교육과 감독 강화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가정과 다문화 가정의 일상적인 왕래를 잠재적 위반 행위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정상적인 이동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재량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는 사회.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이번에는 어떤 말을 들어야 하나”를 걱정하는 대신 명확한 기준과 공정한 절차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출입국 정책이 새롭게 고민해야 할 기준이자,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현실에 걸맞은 다음 단계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