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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삼국시대 한반도 실크로드 경기도 산성 '당성'을 가다

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당성
7세기 당나라로 통하는 유일한 항구 역할을 했던 당성

 

[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당성 가는 길은 그 길목에서 만나는 정서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당성을 오르려니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이곳은 햇볕 쨍쨍한 여름이면 소금밭으로 반짝이고, 시원스레 트인 평야가 풍요로운 느낌마저 준다. 그 사이에 만나는 남양.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법을 구하러 가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닮음을 얻은 곳이 이곳 남양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사적 제217호 화성 당성 (唐城)은 삼국시대 각국이 쟁탈했던 요충지로서 백제·고구려·신라로 이어지는 그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역사변화의 중심이 되는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국제적 교류의 관문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당성은 1차성 축성 이후 성의 기능 확장에 의해 2차성을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1차성은 구봉산에서 봉화 산으로 뻗는 남서능선 정상부에 약 600m의 테뫼식 산성으로 6~8세기대의 신라유물이 다수 출토되었고, 2차성은 1차성의 중심부를 관통해 구봉산의 곡간 부를 감싸는 약 1.2km에 달하는 포곡식 산성으로 통일신라~조선시대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어 고대로부터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격전지이자 통일신라의 기틀이 되었던 당성은 오늘날 많이 훼손되어진 채로 남아 있다. 당성이 소재해 있는 화성시는 채인석 시장이 취임하면서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성은 통일신라의 유적지이자 한반도와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가고 있으나 당성입구라는 팻말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당성 동문 지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10분 정도면 된다. 당성 동문지에 앞서 서있는 당성비와 안내간판은 현재 당성이 복원중임을 말해주고 있다. 당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동문지의 형태만 남아 있을 뿐 동문의 형태가 어떠한 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동문지에서 현재 복원 중인 서문 쪽으로 가기위해 성벽을 따라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동문지 바로 뒤에 당성 우물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성의 중심은 동문과 우물지를 중심으로 원형의 팔을 펼치는 형식의 성곽이다. 동문지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서해안의 포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문 성곽길을 따라 서남방향으로 걷다보면 무너진 구간이 나온다. 아마도 포구로 직접 내려가기 위한 암문이거나 서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너무 허물어져 문의 형태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서쪽 성벽의 아래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해안 쪽으로 적이 공격해 온다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 높이와 경시를 가지고 있는 구간이 당성의 동남 구간이다. 성벽의 높이는 서쪽으로 갈수록 더 높아진다. 서해안을 직접 대면하고 있는 서쪽 성벽구간은 당성의 가장 핵심부에 해당된다. 성벽의 높이도 4m 가까우며 당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구봉산 정상이 바로 서쪽에 위치해 있다.

 

 

성안에는 읍지(邑誌)에 전하는 망해루의 초석만 남아 있으나 정상에 올라서면 경관이 그만이다. 망해루를 기점으로 육일리 방향으로 신라인들이 새로 만든 2차 성벽이 이어진다. 아직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흔적만 남아 있는 구간이다. 성벽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아래쪽은 절벽처럼 가파른 구간이기 때문에 성벽을 쌓기에 적합할 것으로 추측된다.

 

동문에서 북문으로 꺾이는 부분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과 연결된 길을 따라 가면 당성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우물지에 연결된다. 일부 무너진 석축을 정비해 새로 쌓은 것은 1995년 봄이다. 북문터와 남문터가 있으나, 동문터는 확실치 않다. 다만 최근에 사적을 보수하면서 산성 진입로를 낸 곳이 동문터가 아닌가 추측된다.

 

 

당성은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신라가 점령한 뒤 당항성(唐項城)이라 했는데, 중국과 서해를 통해 교역을 이루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신라 후기에는 당성진(唐城鎭)을 설치해 강화의 혈구진, 완도의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서해 근거지가 중요시됐던 곳이다. 경덕왕 당시는 당은군(唐恩郡)에 속하기도 했다. 이 무렵 중국의 홍천하(洪天河)가 여기 머물러 살아 남양홍씨의 시원지로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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