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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복, 그리고 줄탁동시(啐啄同時)


▲ 경기동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명덕


8.15일은 제72주년 광복절이다. 일제 강점기 자주독립을 위하여 36년 동안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충의와 결의로 일신을 바쳐 산화한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그 날의 기쁨을 경축하는 특별한 날이다. 광복절 노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민족에게 72년 전 8월 15일은 ‘바닷물도 춤을 추는’ 기쁜 날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쁜 마음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오늘의 광복이 어떠한 희생으로 이루어졌는지 경건한 마음으로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의 광복은 강대국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즉 제2차대전에서 연합국측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전범국들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의해 부당하게 점령되거나 주권을 박탈당했던 나라들이 다 같이 주권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그 흐름 속에서 우리도 독립국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은 마치 연합국이 승리했기 때문에 거져 얻어진 보너스인양 인식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2차대전 후 독립주권국가로 탄생하게 되는 국제법적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카이로선언이다. 이 선언 특별조항에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고 명시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받았다. 여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도대체 누가 왜 이러한 조항을 삽입했는가 하는 것이다.


카이로에 모인 3거두(미, 영, 중)중 장제스가 '조선은 수백년동안 중국의 속방이었지만 중국이 내정에 간섭해 본적이 없다. 따라서 조선은 자주독립국가가 되어야한다.'면서 자진해서 이 조항을 삽입하였다. 장제스는 왜 그런 조항을 삽입했던 것인가?  그 이유를 알면 우리나라 독립의 배경은 자동적으로 해명되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시절 임시정부는 중국정부의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지원은 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지원을 받은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폭탄투척사건으로 일본측의 간담을 서늘하게하자 장제스는 '중국도 하지 못한 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 것'을 알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되었다. 아울러 중국과 우리는 일본에 대항하여 연대를 이루게 되었고, 중국측은 '일본의 제국주의를 박멸하는 중국의 양책은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함에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여기서 살펴본 것은 극히 일부분의 예에 지나지 않지만, 그와 같은 선열들의 끈질긴 자구적인 노력과 목숨을 건 투쟁이 없었다면 상황은 결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2차대전이 연합국측의 승리로 끝난 것은 우리가 다시 독립국가로 탄생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그것을 전부로 보아서는 안된다.


고사성어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어미 새가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부화를 꿈꾸는 병아리 스스로 껍데기를 깨는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 선열들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광복이라는 달걀의 껍데기를 깨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독립운동이란 이름으로 끈질기게 전개해온 선열들의 피나는 투쟁의 연장선 위에 오늘날 우리 조국의 탄생은 서 있는 것이다. 8.15광복은 다름 아닌 우리민족의 자구적인 노력과 투쟁에 의한 결과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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