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경기도 오산시 노적봉(露積峰, 160.3m)의 북쪽 산기슭 아래에 있는 저수지로, 황구지천(黃口池川) 동쪽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5년 축조됐다. 화성시 화산저수지 남쪽에 있다 하여 화남저수지라고도 부른다. 유역면적 410ha, 수혜면적 185ha, 총저수량 48만 3,200t이며, 댐의 높이 9.4m, 길이 268m에 이른다. 오산시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지곶동(紙串洞), 남서쪽으로 화성시 정남면(正南面), 북쪽으로 양산동(陽山洞)과 접한다. 1899년(광무 3)에 발간된《수원부읍지(水原府邑誌)》에 산성면 방리 중에 서리(西里)가 처음 나오는데, 서리가 바로 서랑리로 추정된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수원군 성호면(城湖面) 서랑리가 됐다. 그 뒤 1941년 수원군 오산면 관할을 거쳐, 1960년 화성군 오산읍 관할이 됐다.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행정동인 세마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제22대 정조 대왕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수원에 화성 신도시를 건설했다. 장안문 밖에는 만석거와 대유둔, 화성 서쪽에는 축만제와 축만둔, 현
팔부자 거리는 매향여고 맞은편 북수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팔부자 거리는 계획도시로서 수원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유한 도시로 육성키 위해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수원으로 옮겨 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옛 한양의 부자들에게 이자 없이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지금의 거리에 점포를 차리게 해주거나 이주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등 화성 축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때 이들이 형성한 거리가 팔부자 거리며 상업의 진흥을 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했다고 해서 옛날에는 보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0여 년 전 안성의 종이 제조 장인이 수원에 옮겨 살면서 종이에 대한 전통성이 이어지고 있다. 김홍범 기자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괜찮은 장소를 찾기 마련이다. 겨울철 함박눈이 휘날리는 풍경을 감상하며 검으스름하게 녹슨 도로길 앞 은은하게 비추는 술가게를 보면 뭔지 모를 옛 정취에 마음까지 녹는다. 그것도 따끈따끈한 화로난로의 온기가 있다면 금상첨하! 숯불로 때우는 난방방식이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은은하게 해준다. 찾는 길은 인계동 옛 농수산물시장이 있던 거리다.
용호상박 - 용과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듯 하다는 뜻으로 곧 힘이 강한 두 영이 서로 교차를 의미. 존재의 영역권에 있다는 뜻 김홍범 기자
팔색길 중 ‘효행길’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을 참배하러 갈 때 왕래하던 길이다. 지지대비를 시작으로 매교교까지 총 3시간이 소요되며, 매교교에서 융·건릉 까지 더 걷는다면 3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 장마가 소강기에 접어든 7월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팔색길’의 하나인 효행길을 걷기 위해서다. 지지대고개를 가기위해선 버스를 타야 한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기다렸던 버스를 타고 이목동차고지에 내린건 5시 40분, 날은 밝았지만 아직 새벽이라 공기는 시원했다. 앞으로 걷게 될 효행길 지도를 보면서 가야할 길을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보았다. 평소 잘 아는 길이라도 혼자 걷는 건 약간 두려움이 앞선다. 잘 걸을 수 있을까?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드디어 출발점인 지지대고개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는 자동차는 한적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도로가 좁았는데 꽤 넓어진 느낌이다. 지금은 도로가 나고 경사면도 크지 않지만 과거엔 지독하게 힘들고 고생한 고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지지대고개라 불러졌나 보다. 효행공원의 길을 걸으며 이목동차고지 방향으로 내려오니
범.
과거의 우주가 무한한 시간과 온갖 물질을 포괄하는 공간 이라면 차원 우주는 시간만 존재한다. 기존의 물리학 법칙을 무시한다. 여러 존재와 대면한다. 범
온통 화기가 만연하다 거기를 보는듯 하다 조급해진다 피하는게 산책이다 연결해 준다고 했는데 말만 수십번째다 생각해도 힘들듯 하다 감당하기 힘들다 심상치 않다 야외에 있어야 하는데 안에만 있다 별 거리가 없다 심심한 듯 하다 원 거리가 있다 구해주러 오겠지 영원할테니깐 그래야 하니깐 만석거에 있다고 범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란 한자어 그대로 달과 해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조선 시대 어좌의 뒤편에 놓였다. 2007년에 발행된 대한민국의 10,000원 지폐 앞면에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함께 그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병풍으로 흔히 쓰였다. 일단 왼쪽엔 달, 오른쪽엔 해가 떠있는 특이한 배경에다 폭포가 두 줄기 흐르는 다섯 봉우리의 산과 맨 앞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그림의 특징이라 한다면 ‘좌우대칭형식’으로 매우 장엄한 느낌을 준다. 일월오봉도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혹은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고 하며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그림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시경의 천보라는 시의 내용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유홍준의 국보순례 - 일월
카페 이름이 ‘미르’라는 말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르라는 말은 지금의 용의 모습으로, 순수 우리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르는 모험이라는 말도 내포하는 거 같다. 지금도 ‘미르의 전설’ 같은 게임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오늘은 광주시 경안동에 위치한 미르를 찾았다. 실내로 들어가니 아담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커다란 시계다 눈에 들어왔다. 시계의 의미로 보자면 시간, 인간의 삶, 인생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어 길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한정적이라 조금은 어두울 지 모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하는 거 같다. 시계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시계는 인생이란 생각이 들고 시간은 바쁜 일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마도 이곳의 컨셉은 바쁜 일상속에서 잠시나마 삶의 활력소를 얻는 시간을, 이곳에서 천천히 삶의 방향을 잡고 시간을 조금이나마 느긋하게 즐겨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니 반대쪽 벽면의 많은 책들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도 길이 있기 때문이다. 책 향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아늑한 공간속 와인보다 달콤하고, 키스보다 황홀
벌써 40년이 넘었다니 수원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면 이곳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도 들을 만하다.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식당은 수원에서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렸을 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마솥 통닭은 왠지 모를 정감이 진하게 서려 있어,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소년이 된 마냥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가마솥에서 튀겨지는 통닭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앉아 통닭을 먹던 추억에 빠진다. 추억은 끄는 힘이 있나 보다. 인근의 어느 칼국수 집을 보면 저 멀리 부산에서도 찾아 올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에 약한 듯 보인다. 기자도 그러한 추억의 맛을 기억하기 위해 가끔 매향통닭을 찾는 경우가 많다. 매향통닭집은 관광지가 인근에 있어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규모였지만 지금은 옆 건물까지 쓸 정도로 사세를 확장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이곳만의 맛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통닭을 튀길 때 특별한 소스나 소금을 뿌린다. 기름 온도도 중요하다. 또한 속살과 껍데기까지 골고루 익게 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 기술이 몸에 배는 데만도 10년이 걸린다고 하니 어지간한 내공은 있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