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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친환경 이동수단, 전시관에서 만난 자전거의 역사

 

인류가 기원전부터 바퀴를 사용했지만 보행을 돕고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다.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뜨 드 시브락이 만든 셀레리페르(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다. 이는 두 개의 나무 바퀴를 연결해 안장을 얹은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 후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형식은 80년 후인 1861년에 나왔다. 파리에서 대장간 일을 하는 페이르미쇼와 그의 아들이 앞바퀴에 페달을 단 나무 자전거(벨로시페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 자전거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으로 당시 탈것으로 크게 환영받았다고 한다. 벨로시패드는 61년엔 2대에서 시작해 65년에 400대가 팔리면서 대량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됐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바퀴 둘레에 철판을 씌었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심해, 바퀴에 통고무를 쓰면서 1860년대 후반 이 모델로 첫 레이스가 열릴 정도로 기술의 급진전을 이뤘다. 안정감과 스피드를 추구하는 당시 사람들은 1871년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 또는 오디너리로 불리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굴림바퀴의 지름을 크게 하면 같은 한 바퀴 회전이라도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해 자전거를 내 놓은 것이다. 이 자전거는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환영 받으며 자전거 경주를 큰 인기 스포츠로 끌어올렸다.

 

산업혁명이 한창인 1860년대부터 자전거도 빠른 발전을 거듭했다. 그 중 스피드를 겨루는 레이스가 자전거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더 빨리 달리는 튼튼한 모델을 만들려는 메이커와 레이서들의 노력으로 70년대 오디너리, 80년대 체인드라이브를 사용하는 세이프티의 등장을 재촉했다. 1888년에는 공기타이어가 나오며 스피드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자전거로 발전하게 된다. 공기타이이어 바퀴를 사용한 자전거로 인해 자전거 레이스가 젊은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자 스포츠 신문과 자전거 신문들이 다투어 레이스를 열었다. 이런 유행은 영국으로도 옮겨와 1869년 파리와 런던에는 자전거 레이스용 트랙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 자전거 레이스는 올림픽 종목으로 여럿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역사는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첫 도입의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대략 선교사나 개화파에 의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저전거 경기는 일본인들의 영향으로 대한제국시절부터 시작됐다. 국내에서 대회가 열린 것은 1913년 이후라고 전해지고 있다. 22년 5월에는 전국자전거 대회가 열릴 정도로 보급화 되고 해방 후 46년 4월엔 대한자전거경기연맹이 발족됐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세계대회에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 대회였다. 현재 개최되는 사이클 경기의 맥은 6.25동란 직후부터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자전거 사이클이라고 불렀다. 이후 자전거의 인기는 70년까지 이어지며 그 어떤 종목보다 그 인기가 최고였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 큰 발전과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자전거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위세가 한 풀 꺽이고 만다.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게 됐으며, 지금의 집 앞 도로까지 자동차가 차지할 정도로 자전거를 이용하기에 불편한 환경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석유자원의 고갈과 온난화 같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에 자전거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한 시점에 ‘생태교통 2013’이 열렸던 ‘친환경 이동수단 전시관’에서 자전거의 역사와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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