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오레오' 빙수를 맛보고자 카페에테를 찾았다. 진격의 오레오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명작 애니메이션(진격의 거인)을 풍자한 아이템이다. 거대한 거인의 모습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던 터라, 국내 여러 곳에서 패러디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이곳의 빙수 또한 평범하지 않다. 얼마나 거대해 보였으면 진격의 오레오라 불렀을까. 카페엔 삼삼오오 앉아 빙수를 맛보는 손님이 의외로 많았다. 역시나 인기상품, 겨울철이라 손님이 적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열치열이란 단어가 맞긴 맞나보다. 더욱이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연인들도 유독 많이 보였다. 이곳의 빙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진격의 오레오’와 ‘폭풍의 민초빙’으로 알다시피 KBS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영향 탓인지 지금도 유독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잠시 가게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학생들 일행이 우르르 몰려오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빙수를 주문한다. 학생들에게 이곳의 빙수가 어느새 입소문이 난 것이다. ‘진격의 거인’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이곳의 빙수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빙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보드 판에 적혀 있는
200년 전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용연에서 ‘용연지몽’이란 주제하에 화성문화제 전야제가 열렸다. 공연은 ‘용지대월’의 풍경을 재현이라도 하는 듯 전통적인 공연이 주를 이뤘으며 무대는 관악합주, 가야금산조, 대금의 명인인 박용호(전 한예종 교수)의 청성곡에 맞추어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8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방화수류정의 멋스러운 야경과 소나무 풍경. 달은 띄운 듯 달빛에 취해 있었고. 가야금 산조의 소리가 그 풍경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은은히 들려오는 대금소리와 용연을 도는 돛단배였다. 멋스러운 소나무와 용연의 풍경에 시민들은 자연스레 박수가 나왔다. 이어 한량무와 민요 한마당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전야제를 마무리했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을 보이는 11월 중순, 화려했던 단풍을 걷어내고 다가올 겨울철 준비에 한참이다. 김장철엔 유독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돼지고기를 푹 삶아 얇게 썰어 배추와 쌈장에 먹는 보쌈과 쌀쌀한 기온을 뜨듯하게 해 줄 '생두루치기전골'도 그 중의 하나다. 거북시장에서 이 음식으로 소문난 집이 있다면 ‘돈순네 생 두루치기’집이다. 외관과는 달리 역시 시장 안 식당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벌써부터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를 한 사발씩 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오리 주물럭과 훈제, 백숙등도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특히 두루치기전골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기본반찬은 무말라갱이, 열무김치, 계란반찬, 오이김치 등이 나오며, 떡을 비롯해 돼지고기, 묵은지 등이 푸짐히 들어가 국물 맛을 더욱 얼큰하게 해준다. 두루치기는 안동의 양반가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두루’라는 이름은 다양한 재료를 두루두루 넣어서 사용했다는 의미가 있는데, ‘치기’는 재빠르게 무언가를 하는 동작을 뜻한다고 한다. 손님이 갑작스레 방문하였을 때, 집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재빠르게 요리하는 대에서 유래됐다고 하며, 주재료에 따라 돼지두루치기나 두부두루치기, 삼겹살두루치
인류가 기원전부터 바퀴를 사용했지만 보행을 돕고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다.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뜨 드 시브락이 만든 셀레리페르(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다. 이는 두 개의 나무 바퀴를 연결해 안장을 얹은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 후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형식은 80년 후인 1861년에 나왔다. 파리에서 대장간 일을 하는 페이르미쇼와 그의 아들이 앞바퀴에 페달을 단 나무 자전거(벨로시페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 자전거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으로 당시 탈것으로 크게 환영받았다고 한다. 벨로시패드는 61년엔 2대에서 시작해 65년에 400대가 팔리면서 대량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됐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바퀴 둘레에 철판을 씌었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심해, 바퀴에 통고무를 쓰면서 1860년대 후반 이 모델로 첫 레이스가 열릴 정도로 기술의 급진전을 이뤘다. 안정감과 스피드를 추구하는 당시 사람들은 1871년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 또는 오디너리로 불리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굴림바퀴의 지름을 크게 하면 같은 한 바퀴 회전이라도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팔부자 거리에 위치한 문구거리는 매향여고 맞은편 북수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팔부자 거리는 계획도시로서 수원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유한 도시로 육성키 위해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수원으로 옮겨 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옛 한양의 부자들에게 이자 없이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지금의 거리에 점포를 차리게 해주거나 이주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등 화성 축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때 이들이 형성한 거리가 팔부자 거리이며 상업의 진흥을 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했다고 해서 옛날에는 보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0여 년 전 안성의 종이 제조 장인이 수원에 옮겨 살면서 종이에 대한 전통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전통성을 이으려는 듯 20여 년 전부터 하나씩 들어선 도매 문구점들은 지금은 거리를 형성했다. 한 때 집장촌 지역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각종 문구점을 비롯 사무용품, 포장지, 복사지나 포토인쇄용지 등을 저렴하게 파는 문구 도매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거리는 옛 향기가 곳곳에 묻어 있다. 오래된 건물들은 70년대를 연상케 한다. 좁은 골목길도 있으며 여러 이야기를 담은 벽화들이 여러 곳에 그려져 있다. 여러 가지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 지겨울 정도로 더위가 한창이다. 더위가 계속되면 식욕도 떨어지고 능률 뿐 아니라 잠도 설치기 일쑤다. 그렇다고 외부활동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 근처에 맛있다는 보리밥 집을 찾았다. 산에서 먹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구수한 청국장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기다린 듯 숭늉이 입안을 가시게 해주었다. 뚝배기엔 비지와 청국장을, 그릇엔 채소와 반찬들로, 이 조합으로 적절히 넣고 섞어 비비면 된다. 고추장을 모양새 좋게 보리밥위에 뿌렸다. 빙글빙글 도는 모양 또는 웃는 얼굴, 기분이 안 좋으면 지그재그로 고추장을 풀어 넣는다. 그 때마다 맛도 달라지는 듯하다. 이내 참기름을 뿌리면 준비는 끝. 적절히 섞어 먹으면 된다. 식욕이 없는 요즘. 보리밥으로 식욕을 돋구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화령전은 사적115호임에도 불구하고 화성행궁의 부속건물의 이미지로 전략한지 오래다. 별도의 출입구 없이 운영되는 화령전은 화성행궁으로 들어와야 관람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주민과 단절된 느낌마저 든다. 화령전은 1800년 6월 28일 정조대왕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정조대왕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어진봉안각이다. 국왕 순조가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찾아가 문안을 여쭙는 전각이기도 했으며, 특히 정조의 사당인 이 곳에서는 역대 국왕의 현륭원과 건릉을 다녀갈 때마다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화령전에는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정전인 운한각과 풍화당, 화재나 홍수 등 만약의 사태가 났을 때 정조의 어진을 옮겨 모시는 이안청, 국왕 및 제사를 모시기 위해 화령전에 온 관리들이 몸을 깨끗이 하고 대기하는 재실, 화령전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전사청 등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정치철학과 효심을 본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수원화성의 위대함, 화성행궁의 아름다움, 무예24기와 같은 용맹함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은 외면 받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주민과 관광객에게 외면 받고 있는 사적 115호 화령
내린 비는 자연을 식히기에 충분했다. 오전에는 선선한 날씨를 보여 이내 산뜻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날도 잠시, 태양은 다시 뜨겁게 달궜다. 한 주를 시작하는 마음에서 가까운 만석공원을 향했다. 광교산을 오를 예정 이였지만 비로 인해 취소했다. 만석공원은 1795년 수원화성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공원이다. 만석거는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면서 이곳에 백성들과 인근지역에 장용영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많은 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예부터 곡창지대였던 수원지역에 정조는 더 많은 쌀을 생산하기 위해 저수지 농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당시 주요한 저수지는 농촌진흥청 앞에 있는 서호인 축만제, 만석공원에 있는 만석거, 얼마 전 발견된 만년제가 그것이다. 만석공원에도 둘러볼 수 있는 1.3km의 코스가 있다. 볼거리도 다양하다. 남수문을 닮은 교각과 영화정이 보인다. 영화정은 ㄱ 모양인데 개방을 하지 않아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둘레길로 다시 들어오니 간간히 자전거가 지나갔다. 이곳 조깅 코스는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도심에서는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마음껏 탈
동물 중 하나의 과(科)로써는 가장 성공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종류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전 세계의 개미 수를 모두 합치면 약 10,000,000,000,000,000 ~ 20,000,000,000,000,000(1경 ~ 2경)마리가 된다고 추산하고 있다. 여왕개미와 수개미, 불임 노동계급인 일개미로 나누어져 있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그 시작을 고하는 '작헌의’, 화령전을 다녀오다 지난 2012년 화령전 ‘작헌의’ 행사가 진행됐었다.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1801(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 영전이라고 하면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화령전엔 정조대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봉안해 놓았기 때문이다. 화령전의 이름은 화성에서 화를 가져왔고, 국풍주남 갈담의 마지막 구절인 ‘부모에게 문안하리라’에서 ‘령’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묘전각의 편액은 순조가 직접 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화령전에서 열리는 의식행사인 ‘작헌의’는 술따를 ‘작(酌)’ 바칠 ‘헌(獻)’ 으로 임금이 손수 잔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왕비의 조상이나 문묘의 신위에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던 제도로서 본래는 계급이 낮은 하관이 상관에게 하거나 제자가 스승에게 아뢰거나 물어보고자 하는 말이 있을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술병을 들고 찾아가는 예'라고 생각한 데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러한 의식이 발전하면서 작헌은 산 사람 사이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소원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