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흔드는 건 나라를 망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강한 표현이지만, 과장이 아니다. 12월 31일 기자회견에서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의 외침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의 본질을 꿰뚫는 경고였다.
반도체는 대한민국 최대의 주력산업이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다. 그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년간 계획하고, 막대한 행정력과 재정을 투입해 추진해 온 사업이 바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다.
현재 용인특례시에서는 SK하이닉스의 첫 번째 팹(Fab) 건설이 이미 진행 중이고, 산업단지 조성 공정률은 70%를 넘어섰다. 용수·전력 인프라는 이미 90% 이상 구축된 상태다. ‘계획 단계’가 아니라 ‘실행 단계’를 넘어 ‘완성 단계’로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정치권과 행정부 인사들이 “지방 이전”을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위험하다. 반도체 산업은 속도와 집적이 생명이다. 이미 집적된 인프라와 기업 생태계를 포기하고, 새 지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주장은 산업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이상일 시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이유다.
특히 전력 문제를 들어 이전을 주장하는 발언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가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전력과 용수는 ‘이전의 이유’가 아니라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의 역할은 산업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기반을 책임지고 구축하는 데 있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6기의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 역시 이미 정부 승인 아래 진행 중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 두 곳이 동시에 투자하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지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국가 전략 그 자체다.
이상일 시장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책임 있는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엇갈린 메시지가 나오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기업의 신뢰이고, 그 다음은 국가의 정책 신뢰다. 반도체 산업에서 신뢰는 곧 경쟁력이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문제 제기다.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경쟁에서 시간은 곧 기술이다. 경쟁국들이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경직된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상일 시장의 요구는 노동권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국가 전략산업의 연구개발만큼은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접근하자는 제안이다.
지역 균형 발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균형 발전은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든 국가 핵심 프로젝트를 흔드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없다. 다른 지역에는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산업과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상식이다. 모두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엔진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특정 도시의 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먹거리이자, 다음 세대의 일자리이며, 국가 생존 전략이다. 이를 흔드는 발언은 결국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일관된 정책,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국가적 책임감이다.














